
2026년 지방선거 정국이 본격화되면서 전국 곳곳에서 낯익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돔구장, K팝 아레나, 복합 스포츠 시설—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서울이나 대도시 광역단체 수준에서나 나오던 조 단위짜리 공약들이 이제는 기초지자체 후보들의 현수막에도 버젓이 등장하고 있다. 프로야구 관중 수 신기록과 K팝의 글로벌 열풍이라는 시대적 분위기가 맞닿으면서, 정치권은 이 ‘문화적 에너지’를 선거 공약이라는 형태로 재가공해 유권자 앞에 내놓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공약들이 지역의 수요, 재정 여건, 장기 운영 계획과 맞닿아 있는지 여부다. 화려한 시설의 상상도가 현수막을 가득 채우는 동안, 정작 그 시설이 만들어낼 부채의 윤곽은 아무도 그리지 않는다. 이 칼럼은 그 윤곽을 찬찬히 들여다보려는 시도다.
출처 : 기초단체까지 돔구장·아레나 ‘복붙’…시류 편승한 SOC 남발
전국, 대규모 SOC 공약 난발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대규모 SOC(사회간접자본) 건설 공약이 전국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주목할 점은 그 공약의 ‘하향 이동’이다. 과거라면 광역자치단체, 즉 시·도지사 선거에서나 등장했을 법한 돔구장·아레나 공약이 이제는 기초단체장 후보들 사이에서도 거의 동일한 형태로 복사되어 나타나고 있다. 연고 프로구단 하나 없는 중소 도시에서도 돔구장 공약이 나오고, 심지어 이를 보완하기 위해 ‘프로구단 유치‘라는 또 다른 불확실한 약속을 덧붙이는 경우도 있다. 공약이 공약을 낳는 구조, 즉 하나의 실현되지 않은 전제 위에 또 다른 약속을 쌓아 올리는 방식이다. 인구 수만 명 규모의 기초지자체에서 수천억 원짜리 시설 건립이 논의된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 선거 공약의 현실 감각이 어느 수준에 놓여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모습

새로운 표심 공약 필요
가장 직접적인 배경은 현금성 복지 공약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서, 정치권이 새로운 ‘표심 자극 도구’를 찾아야 했다는 점에 있다. 직접적인 현금 지급이나 복지 확대 공약이 ‘포퓰리즘’ 비판을 받기 쉬워진 환경에서, 대규모 시설 건립은 훨씬 더 그럴듯한 외양을 갖추고 있다. 눈에 보이는 건물, 지역의 랜드마크,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이 세 가지가 결합된 SOC 공약은 비판하기도 쉽지 않고 유권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도 효과적이다. 게다가 프로야구 흥행과 K팝 공연 시장의 폭발적 성장은 이러한 공약에 시대적 정당성처럼 기능한다. 후보 입장에서는 ‘왜 우리 지역에는 없냐’는 질문에 대한 가장 쉬운 답변이 바로 이 공약인 셈이다.
지역 불균형 해소
지역 불균형에 대한 누적된 불만도 이 현상의 구조적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지방 시민들은 ‘우리 지역도 뭔가 있어야 한다‘는 정서적 결핍감을 느끼고 있고, 정치권은 이 결핍감을 공략한다. 랜드마크형 시설은 단순한 편의 시설이 아니라 ‘지역 자존심’의 상징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이성적 판단보다 감성적 호소가 작동하는 선거 공간에서 더욱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동시에 지역 언론과 지역 건설업계의 이해관계가 이런 공약에 우호적인 환경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대형 건설 사업은 지역 내 단기 경제 효과를 만들어내고, 이것이 공약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약화시키는 사회적 토양이 되기도 한다.
당선 이후, 공약 검증 시스템 부재
공약 검증 시스템의 부재도 핵심적인 제도적 요인이다. 선거 공약은 법적 구속력이 약하고, 예산 확보 방안이나 사후 운영 계획을 공약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할 의무가 사실상 없다. 중앙정부의 지방 재정 지원 구조도 문제를 키운다. 지역 재원만으로는 이런 시설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국비 확보 가능성을 전제로 공약이 설계되는데, 이는 지자체 간 국비 쟁탈 경쟁을 심화시킨다.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건설 비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타당성 분석 당시 예상했던 예산이 착공 시점에는 이미 크게 늘어나 있는 경우가 반복되어 왔고, 이는 재정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는 구조적 함정으로 작용한다.
결국은 지역 세금으로

이 공약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다. 후보자 입장에서는 당선을 위한 효과적인 도구이고, 지역 건설업계와 부동산 시장 입장에서는 기대 수익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단기적으로는 기대감이 형성되어 부동산 투기 심리를 자극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지방 재정 당국은 장기적으로 유지관리 비용과 부채 부담을 떠안게 되는 구조에 놓인다.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선심성 국비 지원 요구가 늘어나는 부담이 생기고, 그 결과 우선순위가 뒤틀린 재정 배분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가장 큰 비용을 치르는 것은 지역 납세자이지만, 그들이 선거 시점에 이 구조 전체를 인지하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 선거제도의 실태

이 현상은 지방 정치의 구조적 변화와 맞닿아 있다. 지방자치가 성숙해지면서 지역 후보자들의 공약 수준도 점차 ‘상향’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데, 문제는 그 상향이 정책의 질이 아니라 공약의 규모에서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SNS와 유튜브를 통한 정치 소통이 확산되면서,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대형 시설 공약이 더욱 효과적인 미디어 콘텐츠로 기능하는 측면도 있다. 인구 소멸이라는 구조적 위기 앞에서 지자체들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이 마땅치 않다 보니, 대규모 시설 유치라는 ‘돌파구 환상’에 더욱 의존하게 되는 경향도 관찰된다. 과거 실패 사례—강원도 알펜시아의 누적 부채, 양양공항의 유령 공항화, 각 지역 컨벤션 센터와 경전철의 만성 적자—가 충분한 학습 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 구조가 얼마나 반복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실제 SOC 공약이 현실화된다고 해도 단기적으로는 공약에 따른 기대감이 지역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고 지역 내 건설 경기에 일시적인 활기를 줄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실현되지 못하거나 잘못 설계된 대형 시설은 지방 재정에 치명적인 부채를 남긴다. 재정이 악화된 지자체는 결국 복지, 교육, 의료 등 주민의 일상과 직결된 예산을 삭감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유령 시설’이 도시 한 켠에 방치될 경우 도시 미관과 공간 효율성이 저하되고, 이는 도시 전반의 매력도를 낮추어 오히려 인구 유출을 가속화하는 역설을 낳기도 한다. 지자체 간 무분별한 시설 경쟁은 행정력 낭비를 심화시키며, 정작 지역에 필요한 실질적 정책 개발에 투입해야 할 에너지를 분산시킨다. 사회 전체 차원에서는 공약에 대한 불신이 누적되어 지방 민주주의의 신뢰 기반을 서서히 잠식할 위험도 있다.
실현 가능성을 확인해야

지역 주민 개인의 입장에서 이 공약은 이중적인 함의를 갖는다. 선거 시점에는 ‘드디어 우리 지역도 뭔가 생기겠구나’라는 기대감을 주지만, 사업이 실패하거나 축소될 경우 그 실망과 재정 부담은 고스란히 지역 납세자의 몫으로 돌아온다. 대형 시설 건립 공약이 발표되면 인근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 시점에 투자한 사람들이 나중에 피해를 보는 사례도 반복되어 왔다. 더 근본적으로는, 실제 삶의 질 개선—의료 접근성, 교육 환경, 대중교통 편의성, 일자리의 질—과 거리가 먼 공약에 표를 던지는 것이 결국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유권자 개인이 공약의 화려함이 아니라 실현 가능성과 재정 근거를 묻는 습관을 갖출 때, 비로소 이 반복되는 구조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내가 보는 핵심 포인트
이번 지방선거 SOC 공약 논란은 단순히 몇몇 후보의 과욕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지방 정치가 어떤 방식으로 유권자와 소통해왔는지, 그리고 유권자가 어떤 언어에 반응해왔는지에 대한 오랜 학습의 결과물이다. 공약의 타당성을 검증할 제도적 장치가 없고, 실패해도 책임지는 구조가 약하며, 화려한 비전이 실질적 정책보다 더 잘 팔리는 환경—이 세 가지가 결합된 곳에서 ‘복붙 공약’은 합리적인 전략이 된다. 인구가 줄어드는 기초지자체에 조 단위 시설 공약이 등장하는 아이러니는 단지 웃지 못할 해프닝이 아니라, 지방 정치의 상상력이 어디에서 멈춰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지역을 살리는 것은 거대한 건물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사람들이 왜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산업, 문화, 공동체의 이야기—즉 소프트웨어적 정책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정책을 요구하는 것은, 결국 유권자의 몫이다.
- SOC 공약은 지방에서 실현 어려운 빈약한 공약
- 검증·책임 없는 구조 속 반복되는 ‘복붙 공약’의 악순환
- 지역을 살리는 건 건물이 아닌 삶의 이유, 유권자의 안목 필요
콘크리트는 지역을 바꾸지 않는다. 지역을 바꾸는 것은 그 안에서 삶을 이어갈 이유를 만드는 일이다.